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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본문

2008년 2월 17일 `칠정교회 주일예배 설교

로마서 4장 1절로 5절, 13절로 17절 말씀 설교자 / 조한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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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지난 한 주간 동안 우리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 빠져있었습니다.

바로 국보 제 1호 숭례문을 잃었기 때문인데요, 600년 역사가 불과 다섯 시간 만에 시커먼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를 두고서 정치권에서는 말들이 참 많았죠?

숭례문을 개방하고 문화재 관리를 허술하게 한 것에 대해서 ‘대통령 잘못이다, 당시 서울 시장 잘못이다, 초기 진화에 실패한 소방방재청의 잘못이다, 문화재관리청의 잘못이다.’ 등의 여러 말들이 있었습니다마는 제 생각에는 역시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서로에게 잘못을 떠넘기기에 급급해 하기 보다는 ‘그것은 바로 내 잘못입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일 뿐 아니라 이런 일들이 생길 때 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고백을 하자는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목요일에 태안반도에 있는 천리포 해수욕장에 기름방제 작업을 다녀왔습니다.

벌써 기름이 유출된 지가 두 달이나 지났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거의 다 정리가 된 듯이 보였습니다마는 자갈을 들어내고 나니까 모래 속에서 시커먼 기름 찌꺼기들이 한도 끝도 없이 나오는 거예요.

저는 심지어 코메디 영화를 보면서도 가끔씩 코끝이 시큰해지면 잘 우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모래를 퍼내서 헝겊에 씻고 또 씻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많이 울었습니다.

어린 애 배냇저고리부터 시작해서 어머니 아버지 속옷까지 어디서 그런 헝겊들이 다 모여왔는지 대한민국에 있는 헝겊 조각들은 다 걷어 온 것 같았어요.

하루 종일 앉아서 기름을 걸레로 닦아내 봐도 표시도 안 날 만큼 아주 심각했습니다.

 

과거 IMF 때에도 전 국민이 힘을 합쳐서 금 모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결국 나라를 구하는 것은 백성들의 힘이지 무슨 기업이나 정치가들이 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속이 많이 상했지만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것이 삼성의 잘못이라거나 무슨 정부의 잘못이라고만 탓을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잘못이로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까 저절로 회개가 되고요, 기독교가 어떠니 저떠니 해도 그래도 우리 사회를 살리는 것은 우리 교회의 힘이 크구나 싶었습니다.

그날 거기 오신 봉사자들 거의 대부분이 교회에서 오신 분들이더라고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슨 일을 만나든지 내 생각대로, 내 판단대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정치를 할 일도 없겠습니다마는 집에서 부부간에도 그렇고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들 간에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내 생각을 접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각은 극히 제한적이고 이기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들의 판단 기준이 어디에 있어야 하느냐?

따라합시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2)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를 알아봐야 되는 거예요.

‘내 주장은 이런데 과연 하나님의 말씀은 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지?’

많은 사람들이 자기 멋에 산다고들 하는데, 과연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교회의 참된 모습은 무엇이며, 성경이 말씀하고 계시는 성도들의 참된 삶의 모습은 무엇인가?

특별히 오늘 말씀의 주제인 ‘믿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어떤 믿음이 참 믿음이며, 어떻게 믿어야 바르게 믿는 것인가?

결론은 뭐예요?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오늘 우리 교회에서는 초등학생 두 명과 중학생 세 명의 졸업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주일학교를 시작한 지 이제 6년째가 되었기 때문에 아직 고등학교 졸업생은 없는데요.

단성 중학교는 그저께 금요일 날 졸업식이 있었고, 단성 초등학교는 내일 졸업식이 있어요.

우리 학생들이 우리 교회의 미래입니다.

이 학생들이 장차 우리 교회에 기둥들이 될 학생들이거든요.

예상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불신 가정에서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입니다.

얼마나 귀한 사람들인지 몰라요.

이 학생들이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또 중학교를 졸업하고 각각 상급학교에 진학을 해서 열심히 공부하게 될 것이고,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자기 몫을 다 하게 될 텐데, 우리 학생들이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어요.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하는 겁니다.

 

학교에서는 진화론을 가르치죠? 그러면 집에 돌아와서 찾아봐야 되요.

성경에서는 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특별히 오늘부터 시작해서 일평생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우리 칠정교회 교회 학교 졸업생들에게는 오늘 주시는 이 말씀이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믿는 것이 잘 믿는 것인가를 알아야 되거든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참된 ‘믿음’, 그리고 바른 ‘믿음’은 무엇인가?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칠정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번에 졸업을 하는 우리 칠정교회 학생들은 말씀을 잘 들어서 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교회 앞에서 큰 복을 받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마서 4장 전체의 말씀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아브라함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믿음도 아브라함과 같아야 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 종류의 사람들로 나누어서 설명을 할 수가 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 율법에 속한 사람, 그리고 믿음에 속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도 세 종류의 사람들을 말씀하고 계세요.

육신에 속한 사람, 율법에 속한 사람, 그리고 믿음에 속한 사람.

그럼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을 차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니까,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꾸어서 말하자면, ‘육신으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이거든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육신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졸업예배를 드리고 있는 학생들이나 우리 성도님들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를 믿기 전에는 모두가 다 육신에 속한 사람들이었어요.

 

어떤 사람들이 육신에 속한 사람들인지 아세요?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썩어질 육신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먹고사는 문제만을 위해서 치고받고 싸우기도 하고요, 때로는 심각하게 고민을 하면서 애를 쓰고, 투자를 하고… 그러면서 사는 겁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그저 자기만을 위해서 일을 하지 하나님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간혹 교회에 나오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아직 변화가 되지 않아서 아직까지 육신에 속한 사람들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걸 싫어합니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고요, 뭐든지 자기만을 위해서 끌어 모으려고만 하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육신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갈 수가 없어요.

자기만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율법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다 같이 봉독하시겠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율법에 속한 사람들은 행위로써 구원을 얻겠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택하심도 받았고, 하나님 앞에 부르심도 받았거든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 나와서 보니까, 자신들의 모습이 뭔가 하나님 앞에서 부족해 보인단 말예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고 사람들 앞에서도 그렇고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열심히 교회출석을 하면서 구제도 하고, 봉사도 하고, 소위 말하는 실적(?)을 쌓아나가는 거죠.

그러는 동안 시간이 지나가면서 교회 안에서 직분도 점점 높아져(?)갑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히 목에 힘을 주게 되고요 그리고 스스로 생각을 합니다.

‘나도 이제 이만큼 했으니까, 천국은 따 놓은 당상이지. 우리 교회에서 나만큼 봉사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우리 교회에서 나만큼 믿음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래서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하던 사람이 장로만 되고 나면 ‘에헴~’하고 뒷짐이나 지고 앉아 있으려고 해요.

이제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거죠. 율법을 다 지켰다는 겁니다.

자기 스스로 교만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가 하면 율법에 속한 사람들은 늘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쉬워요.

그래서 율법에 속한 사람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기가 쉽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가서 한 마디 하려면 이 정도 가지고 될까? 이것 보다는 더 열심히 해야 되는데… 아이고, 열심히 해 보려고 했는데 그만 또 실수를 하고 말았네. 하나님이 보시고 또 벌을 주시겠네. 이제 난 죽었다. ㅠㅠ’

율법에 속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참된 믿음이 아니예요.

 

마지막으로 세 번째, 믿음에 속한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 4절, 5절 말씀을 보세요.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자, 여기를 보세요!

사도 바울 선생은 유대인들에게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유대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여러 가지 면에서 칭송을 받는 사람입니다마는 아브라함도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믿음을 통해서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아브람이(나중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고쳐 주셨습니다마는) 처음에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나서 얼마동안은 얼마나 방황을 하면서 세월을 허송했는지 모릅니다.

때로는 하나님 앞에 제대로 잘 순종하지도 못했고요, 믿음에 있어서도 실패를 많이 했던 사람이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그가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창15:6)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뭐예요?

육신으로 살아서 구원 받아요? 못 받아요?

그럼, 율법을 철저하게 잘 지키면 율법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까? 못 받습니까?

못 받죠. 어림없습니다.

육신으로 살아선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고요, 우리가 아무리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애를 써도 그것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을 수가 없는 거예요.

만약에 어떤 사람이 율법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모두 다 지켜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마땅히 일하고 받는 대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부르심을 받기 전이나 부르심을 받고 난 후에나 똑같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내어 놓을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세울 공로가 뭐가 있었겠어요?

내가 이제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었으니 하나님 앞에서 한 마디 할 수 있는 겁니까?

아브라함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여전히 불의한 죄인들이요, 경건치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 줄 믿습니다.

 

그리고 13절부터 17절까지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해 주시겠다는 이 약속의 말씀도 율법으로 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의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대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우리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거예요.

16절 말씀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잖아요?

다 같이 한 목소리로 16절 말씀을 봉독하실까요?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아멘!)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라.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세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17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오늘 졸업예배를 드리는 학생 여러분!

세상엔 많은 학문이 있습니다.

공부해야 할 것들도 무척 많아요.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우선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먼저 생각해야 되요.

세상의 학문과 세상의 지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작년엔가 신문을 보니까 인천의 어느 병원에서 폐암에 걸린 70세 할아버지가 수술실에 들어가서 수술을 하고 나왔대요.

의사 말이 ‘아주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 되었다.’고 해서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폐암이 걸린 오른쪽 폐는 내버려 두고 멀쩡한 왼쪽 폐를 잘라 냈다는 거예요.

 

어디 그것뿐인가요?

대전 어느 병원에서는 갑상선이 아파서 입원을 했는데, 수술실에 들어가서 수술을 하고 나왔더니, 갑상선 수술은 안 하고 멀쩡한 위를 잘라냈더랍니다.

그리고 수술 잘 되었으니 걱정 말라고 그러더래요.

그런데 같은 날 위암 환자 수술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위암 수술 대신에 갑상선을 떼어냈다 나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챠트(환자 기록 카드)가 서로 바뀌었더래요.

 

어떤 사람은 사랑니를 빼러 갔더니 사랑니는 그대로 있고 엉뚱한 어금니가 감쪽같이 없어졌더라나요?

어떤 사람은 왼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그만 실수로 오른쪽 다리를 자르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두 다리를 다 잃어버리고 말았답니다.

이게 무슨 해외 토픽에 나오는 얘기들이 아니고 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이에요.

 

여러분, 무엇을 믿으시겠어요?

저 우주를 행해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는 엄청난 과학 기술이 대단해 보이세요?

사람의 DNA구조를 분석해서 유전자를 조작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새로운 생명체까지 만들어 내겠다고 큰 소리 뻥뻥치는 유전공학이나 생명공학을 믿으면서 사실 거예요?

오늘 졸업 예배를 드리고 상급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는 우리 학생들도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겁니까?

세상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원더걸스가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얼마 안 가서 금방 바뀌는 것 좀 보세요.

 

우리들은 모두가 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믿음의 후손들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히11:6)

아브라함의 믿음은 육신에 속한 사람을 벗어 버리는 믿음입니다.

아직까지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거듭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율법에 속한 사람을 능가하는 믿음이예요.

자기 의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의롭다 인정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믿음에 속한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즉,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