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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회의 구원론

본문

우리 총회 게시판(본 게시판)에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글이 게제되는 경우가 있어 제 소견을 올립니다. 부족한 점이 있드라도 양지하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장로교 통합측교단은 극단적인 예정론을 구원론으로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 증거는 감리교(알미니안)를 이단이라고 말하는 목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국 장로교가 알미니안에 동화된 것은 더욱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오직 은총)는 사실을 믿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로 믿으도(알미니안) 구원 받고,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총으로 믿으도(장로교) 구원 받는데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인간의 자유의지로 믿는 사람도 있고, 내 자유의지로 생각하기도 전에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감리교가 이단이 아닌 것과 동일하게 장로교도 이단이 아닌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구원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만 반드시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단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은 반드시 행함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부언하지만 구원받는데 행위가 없으면 안된다는 것은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다른 복음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더 자세히 알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해 전에 올렸든 다음 글을 참고로 다시 올립니다.

디카이오수네(dikaiosune)와 행함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실 때  천국과 지옥을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은 의롭게 사는 자는 천국에, 악하게 사는 자는 지옥에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구원(지옥가지 않고 천국 가는 것)을 받기 위해서는 의로운 행위가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원초적으로 권선징악(勸善懲惡), 인과응보(因果應報)의 규범안서 살아야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규범(율법)중 한 가지라도 어기게 되면 멸망(죄의 삯은 사망)을 받게 됩니다. 이런바 행위심판을 받게 됩니다.

다라서 성경(다른 모든 종교의 경전도)은 신구약 모든 곳에서 강력하게 율법을 지킬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신약에 예수님도 행위를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행함으로 구원받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우리들의 죄의 삯을 대신해서 십자가상의 죽음을 자취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확률이 0%인 행위구원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시는 말씀을 행함이 없이는 구원 받을 수 없다는 말씀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죄를 범한 손을 찍어버리고, 죄를 범한 눈을 빼버리라고 하신 말씀은 그렇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고, 손을 찍고, 눈을 뺄 수 없는 것과 같이 행위로는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부자청년의 경우도 같습니다. 부자 청년은 자기가 율법을 다행했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부자가 재물을 가지고 있는 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율법을 결코 지켰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 하고 계십니다. 부자가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사람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 해도 그 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를 따라 믿어야 합니다.

행위로는 절대로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전재로 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피 공로만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칭의구원)는 사실을 옛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헬라어 디카이오수네(dikaiosune)라는 용어를 씁니다. 이 용어의 뜻은 
“한 사람을 진정 옳거나 선한 존재가 되게 해주는 그 무엇” 간단히“진정한 내면의 선”¹을 말합니다. 즉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 공로를 믿으면 영혼의 내면이 ‘디카이오수네 되어 우리에게서 자연스럽고 쉽게 선하고 의로운 행동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꾸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먼저 믿고 성령을 힘입어 우리의 심령이 디카이오수네 상태가 되면 선하고 의로운 행동이 나올 수 있지만 거꾸로 사람이 선하고 의로운 행위를 함으로 믿는 자가 될 수는 없다는 이론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믿음과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한 자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라  하고 저주를 퍼 붇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행위는 디카이오수네된 후에 자연스럽게나오는 행위를 말합니다.
만약 믿노라 하면서도 행함이 없다면 이는 디카이오수네가 없는 것이요. 디카이오수네가 없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요 죽은 믿음이라는 뜻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디카이오수네 없이는 행함이 있을 수 없고 만약 디카이오수네 이전에 행함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잘못된 것입이다. 이 디카이오수네는 믿음으로 만 가능합니다.

¹“하나님의 모락”  달라스 월라드 지음 윤종석 옮김 도서출판 복 있는 사람 207쪽

2008년 9월 8일
원로 Essay중에서
성도교회 원로목사 예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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